시론] 일제고사, 영국의 실패에서 배우자 / 하태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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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고사 결과를 놓고 일제고사 논란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10여년 전에 영국에서 있었던 논란과 상당부분 유사하다. 우리보다 먼저 일제고사를 도입했던 영국은 이제 그 문제를 인식하고 점진적으로 일제고사를 폐지하는 순서를 밟고 있어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1997년 ‘교육, 교육, 교육’이라는 취임 일성으로 집권 첫 연설을 했던 영국의 전총리 토니 블레어는 일련의 교육개혁 정책들을 도입했는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정책이 일제고사였다. 이 시험은 국가의 재정 지원을 받는 모든 공립·사립공영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시행되었으며, 그 결과가 학교·지역별로 공개됨으로써 교육 소비자인 학부모가 학교를 비교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의사시장(Quasi-market) 구조가 만들어졌다. 그중 백미는 언론이 ‘학교명 공개로 망신주기’(Naming & Shaming)라는 별칭으로 불렀던 정책이다. 점수가 가장 낮은 학교들을 공개로 거론함으로써 분발을 촉구했다. 정부로서는 학부모의 선택권으로 대표되는 자율성 확대와 함께 학교의 ‘품질관리’ 역시 소비자들의 힘으로 만들어 내는 일거양득의 치적을 남기게 된 것이다. 엄청난 비판과 반발에도 초등학교의 전국 평균성적은 일정부분 상승했고, 성적이 나쁜 학교들은 각종 지원책들을 통해 새출발을 다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 그러나 정부의 장밋빛 전망과 달리 성적이 오른 학교들은 대부분 부유한 중산층의 대거 유입으로 성적을 올렸다. 그들이 빠져나간 학교들은 ‘빈익빈’ 상황에 빠져들었다. 탐사보도 전문기자인 닉 데이비스가 학교 현장을 취재하고 쓴 책 <위기의 학교>(이병곤 역, 우리교육)는 평준화 정책이 시장적 발상으로 바뀌면서, 발빠른 중산층들이 어떻게 시스템의 허점을 파고드는지, 그리고 그 달음박질에서 도태된 아이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그들이 다니는 학교는 어떻게 낙인찍히고 또다시 문제 청소년들을 양산해 내는 장으로 악순환 하는지를 매우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런 문제점들을 인식하면서 영국을 구성하고 있는 잉글랜드·웨일스·스코틀랜드·북아일랜드 중에서 먼저 웨일스가 떨어져 나갔다. 성적 하락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에도 2001년부터 웨일스의 교육부 장관 카렌 골드는 점차적으로 일제고사 폐지 혹은 선택화, 성적공개 폐지, 교내평가 등을 추진해 왔다. 스코틀랜드 역시 웨일스의 전철을 밟고 있다. 지난해 영국 의회에 보고되었던 연구서는 일제고사를 보는 잉글랜드와 일제고사를 폐지한 웨일스 사이에 유의미한 성적차가 없고 시험준비 문화가 여러 측면에서 교육활동을 방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침내 잉글랜드도 이 조언을 받아들여 2008~09학년도부터 부분적으로(중2단계) 일제고사를 학교 선택으로 전환하고 성적 공개를 폐지하기로 했다. 물론 일제고사와 성적 공개가 전면 폐지된 것은 아니지만 잉글랜드가 웨일스의 뒤를 따르고 있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진다. 우리는 지난해 일제고사 거부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으며, 최근 발표된 결과를 놓고 서로 다른 해석들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거시적인 차원에서 일제고사 정책이 학력 신장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 것인지, 그로써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은 무엇인지에 대한 천착은 드물다. 단지 개인적인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할 수월성과 교육 수요자의 권리, ‘학력’이 아닌 ‘성적’의 논지에 묻혀 있다. 실용정부의 일제고사 도입이 실제로 얼마나 실용적인지 다시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영국 교육정책이 지난 10년 동안 지나온 길은 이를 상징적으로 대변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태욱 성공회대 외래교수·교육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