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10시 인천 서구문화회관에서 열린 경인운하사업 공청회장이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공청회를 주관한 한국수자원공사와 국토해양부에서 나눠준 수건이 무대 위로 날아들었고, 공청회 자료집은 갈기갈기 찢겨 바닥에 버려졌다. 공청회장에는 모두 500여 명의 시민들이 입장했는데, 견해가 다른 참가자들끼리 거칠게 몸싸움을 벌였다. 말하려는 이와 이를 막으려는 이들이 뒤엉켜 온갖 소음으로 뒤범벅이 됐다.
이 소란 속에서도 주관사인 수자원공사 측은 공청회를 강행했다. 단 30여 분 만에 총 29페이지에 달하는 경인운하 사업계획과 운하 주운수로에 대한 환경영향평가와, 김포·인천터미널 및 항만시설에 대한 사전환경성 검토 브리핑을 끝마쳤다.
브리핑이 끝나고 주민 중 한 명이 손을 모으고 소리쳤다.
"정말 이렇게 날림으로, 오늘 하루만에 2조원이 넘는 사업을 통과시킬 겁니까!"
찬성 측 7명에 반대 측 1명?... "공청회 토론회는 일반적인 토론회랑 달라"
▲ 한 지역시민이 20일 오전 인천 서구문화회관에서 열린 경인운하사업 주민공청회에서 토론회 찬반 패널 수를 같이 할 것을 요구하다가 관계자들로부터 제지를 받고 있다
당초 수자원공사는 주민 대표 1명, 사업시행자 1명, 비정부기구(NGO) 대표 1명, 전문가 4명 등 모두 8명의 패널이 각각 5분씩 의견을 개진한 뒤 방청객을 포함한 질의·응답 및 토론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수자원공사가 초청한 전문가 4명과 주민 1명은 모두 수자원공사에서 운영하는 경인운하 건설자문단 소속 인사였고 나머지 2명 역시 사업시행자인 수자원공사 측 인사와 환경영향평가대행자였다. 경인운하 건설을 반대하는 패널은 NGO몫으로 초청된 조강희 경인운하백지화 수도권공동대책위 집행위원장 뿐이었다. 앞서 수자원공사는 토론회 패널을 공개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아마도 이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 위원장 측에서는 즉각 토론회 패널 수 조정을 요구했다. "적어도 5:3은 되어야 하지 않겠냐"는 호소도 이어졌다. 그러나 공허한 메아리였다. 몇몇 찬성 측 주민들과 주최 측에 의해 반대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공청회장 밖으로 밀려났다.
토론회 사회를 맡은 심명필 교수(인하대)는 "공청회 토론회는 일반적인 토론회와 달리 중요한 사업에 대해 관계자들,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좋은 사업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이지 목청을 돋우고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다"며 패널 수 조정 요구를 묵살했다.
짜고 치는 토론회... "일개 시민단체 때문에 나라꼴이 이게 뭐냐" 호통도
▲ 20일 오전 인천 서구문화회관에서 열린 경인운하사업 주민공청회 토론회에선 총 8명의 패널 중 7명이 수자원공사 측 인사들로 채워졌다. 비워져 있는 자리는 수자원공사 측에서 시민단체 몫으로 배정한 곳. 패널로 초청받았던 조강희 경인운하백지화 수도권공대위 위원장은 토론회 공정성을 이유로 퇴장했다.
인천 서구 성남동에 살고 있는 권정달(41)씨는 "경인운하 경제적 타당성에 사용된 KDI 보고서나 네덜란드 DHV사의 사업타당성 보고서에 대한 신뢰성 논란이 계속되는데 그것만 가지고 주장을 펼쳐서 되겠느냐"며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주최 측은 시간 지연을 이유로 마이크를 꺼버렸다.
권씨가 포기하지 않고 "지난번 주민설명회 때도 참석하려고 했지만 경인운하지역협의회 사람들이 막아서 들어가지도 못했고 이번에도 기다리라 해서 지금 질문하는 것"이라고 항변했지만 소용없었다.
경인운하 해사부두가 건설될 김포시 고촌면 신곡리 주민들도 대거 이날 공청회에 참석해서 불만을 제기했지만 "경인운하 건설의 장점과 함께 살릴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들었다.
이길자(52)씨는 "아파트에 입주한 지 1년도 채 안 됐는데 바로 코앞에 해사부두를 만들다니 말이 되냐"며 "주민설명회에 2차례 갔지만 단 1번도 해사부두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들어본 적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찬식(50)씨는 "해사부두에서 9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사는 2만2천여 명의 주민들이 아무 대책도 없이 모래먼지를 먹어야 한다는 말이냐"며 "지금까지 제대로 된 답변을 들은 바가 없다, 만약 계속 이렇다면 불법적인 행동이라도 취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일갈했다.
"15년 간 논란이 된 경인운하 사업, MB 취임 이후 단 2개월 만에 착공?"
▲ 경인운하백지화 수도권공동대책위원회는 20일 오전 경인운하사업 주민공청회에서 퇴장한 뒤 기자회견을 열어 "찬성 측 인사로만 일방적으로 구성된 이번 공청회는 원천적으로 무효"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공청회장에서 내쫓긴 경인운하백지화 수도권공동대책위는 이날 바로 기자회견을 열고 "앞서 열린 4차례의 주민설명회와 이번 주민공청회는 모두 무효"라고 주장했다.
토론회를 거부하고 나온 조강희 위원장은 "(경인운하 건설을 반대하는 사람) 단 1명만을 액세서리로 끼워놓고 진행하는 공청회 토론회가 어떻게 중립적일 수 있느냐"며 "이번 공청회는 경인운하 사업 시행을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경인운하 사업은 지난 15년 간 국책사업 중 가장 논란이 많은 사업인데 이명박 정권들어 단 2개월 만에 속도전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주민들의 의견에 귀를 막고 진행한 이번 사업은 모두 완전무효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수자원공사 측은 "지역의 현안이기 때문에 3개 광역 시·도의 추천을 받은 인사들로 패널을 구성했고, 주민들의 질의에 답변하기 위한 사업시행자와 환경영향평가대행자를 배석했다"며 "저희 나름대로 공정성을 기하고자 했는데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당혹스럽다"고 해명했다.
▲ 경인운하사업 주민공청회가 열린 인천 서구문화회관 앞에는 경인운하 건설을 둘러싸고 찬반 양측의 현수막이 내걸려져 있었다.